삶, 커리어

·

2 min read

2024년 12월 5일, 이 날 퇴원하기로 했던 내 반려견은 하루 전 12월 4일 밤 11시경에 갑작스럽게 강아지별로 떠났다.

처음엔 경황이 없어 눈물도 안나왔다. 처음 겪는 반려견의 죽음에 그저 어리둥절 했다.

"왜 죽었죠?", "갑작스런 심정지입니다.", "그러니까 왜요?", "최선을 다했습니다.", "..."

어이가 없었다. 본인들 환자의 상태도 제대로 말 못하는 사람들이라니.. 정말로 최선을 다했을까?

원망을 뒤로하고 히릿의 시체가 담긴 보라색 상자를 받고 나와 영하 -3도의 추운 밤길 속에서, 혹여 아이가 죽어서도 추워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상자를 꼭 껴안고, 고요히 숨죽인 길을 하염없이 걸어갔다.

히릿은 정말 무거운 아이였다. 살아있을 때 무게 그대로가 내 품 안에서 느껴졌다. 집에 도착해 상자를 열고, 히릿의 머리, 등, 배를 쓰다듬으니 정말 따뜻했다.

아직도 살아있는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몇 번을 부르고 불러도, 좋아하던 장난감을 던져 주어도, 산책줄을 보여주어도 깨어나지 않았다.

새벽 2시경 소식을 들은 여자친구가 차를 몰고 와주었고, 히릿을 보곤 나 대신 참 많이 울어주었다.

3시경 반려 동물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지도사의 안내에 따라 장례를 진행했고, 염습 후 발도장도 찍고, 편지도 쓰고, 꽃과 장난감을 곁에 두어 주었다. 그리고 화장의 순간에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히릿의 죽음 이후 장차 6시간 만에 그제서야 이 아이가 정말 죽었음을 실감했던 것이다.

히릿과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함께하지 못한 시간들에 대해 후회가 빗발쳤다.

처음과 같은 관심을 주고,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따스한 손길을 주었더라면 어땠을까? 2년간 자취를 선택하기 보다 너와의 시간을 소중히 했다면? 그리고 지금의 나는 대체. 그깟 커리어가 뭐길래, 늦바람이 불어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너를 소홀히 대한걸까? 그러지만 않았어도 너는 더 행복한 삶을 살았을 텐데, 더 건강히 살았을 텐데. 병원 안에서 사면이 막히고 사람 다리만 이리 저리 움직이는 것만 보이는 높이의 조그만 케이지 안에서 죽어가는 순간까지 나를 얼마나 보고 싶어했을까?

미안하고 미안하다. 미안했고 미안했다. 그래서 계속 눈물이 나왔다. 참을 수 없이.

화장이 끝나고 유골을 봉안 후 인도받고 나오니 아침 6시가 되었다. 집에 오는 길에 유골함을 계속 쓰다듬었다. 그렇게 하면 하늘에 있는 히릿을 쓰다듬어 주는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집 안에 유골함을 안치하고 나서 잠에 들고 잠에 깨는 순간까지 속 시원히 울기만 했다.

올 한 해는 정말 운이 나빴음이 틀림없다. 히릿을 포함해 소중한 가족을 셋이나 잃었으니. 이런 상실의 경험은 내게 깊은 생각거리를 남기게 되었다.

글을 마치며, 개발자를 넘어 한 사람의 커리어와 삶의 형태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성공적인 커리어란 높은 연봉과 네카라쿠배 같은 빅테크 일자리, 화려한 이력서 등을 치열하게 쟁취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야 내 삶을 열심히 살았다고 인정받는 것이라고.

물론 현실을 살아가는 존재로서 분명히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한 생명의 죽음을 통해 뒤늦게 돌아보자면, 이제는 단순히 우리끼리 얘기하는 뛰어난 스펙과 연봉이 아닌, 소중한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과 관계를 지켜내고, 서로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진정으로 성공한 커리어이자 삶인 것이라 생각한다. 이를 우선적으로 유념하고 유지해내야 한다. 이를 놓친다면, 아무리 좋은 성과를 내도 실패일 것이다.